
세탁실과 와인 저장고가 한 공간에 있다. 약 30평 규모의 이 집은 처음부터 공간의 경계를 지우는 방식으로 설계되었다. 거실, 주방, 세탁실이 각자의 영역을 고집하지 않고 하나의 흐름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여러 활동이 동시에 벌어져도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그 겹침이 집을 더 생동감 있게 만든다.

이 집에서 주방은 단순히 요리하는 곳이 아니다. 중앙에 놓인 큰 테이블이 조리대이자 모임의 중심이 되고, 그 주변으로 일상의 모든 장면이 펼쳐진다. 가전제품은 가구와 같은 결로 마감되어 있어 따로 눈에 띄지 않는다. 기술이 공간에 녹아든다는 표현이 이렇게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구성이다.
세탁실도 마찬가지다. 세탁기와 건조기 옆에 와인 저장 공간이 함께 자리한다. 방을 가로지르는 넓은 선반이 두 영역을 시각적으로 연결하고, 녹색 계열의 색상이 캐비닛과 디테일 곳곳에 반복되며 공간 전체에 통일감을 준다.

거실로 넘어오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돌벽이 질감과 무게감을 더하고, 전략적으로 뚫린 개구부와 유리 패널을 통해 바깥의 조경이 실내로 스며든다. 간접 조명이 벽과 천장을 부드럽게 감싸며, 그 안에 머무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길어지도록 유도한다.

바닥은 나무 본연의 결을 살린 원목 마감으로 마무리되었다. 세라믹 타일과 이어지는 구간에서도 색감의 흐름이 끊기지 않고, 걸레받이가 직선적인 느낌을 강조하며 바닥과 벽의 경계를 또렷하게 정리한다. 소재 하나하나가 구조적 역할을 넘어 공간의 성격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

색상 팔레트는 마르살라, 오렌지, 머스터드, 오커, 그린, 오프화이트를 넘나든다. 천연석, 대리석, 목재의 질감 위에 이 색들이 화분, 오브제, 패브릭을 통해 조금씩 드러난다.

전체적인 조화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시선이 머무는 지점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샹들리에, 식탁 의자, 소파, 안락의자, 작은 레진 벤치까지 각각 다른 디자이너의 손에서 나왔지만 하나의 팔레트 안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침실과 욕실은 벽으로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다. 두 공간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며, 화분 옆에 욕조가 놓이고 대리석 상판이 자연의 질감을 실내로 끌어들인다. 간접 조명과 벽면 개구부를 통한 환기가 더해지면서 이 공간은 단순한 침실이 아니라 감각적인 휴식의 장소가 된다.

이 집이 말하는 것은 결국 하나다. 기술과 소재와 빛이 각자의 자리에서 과하지 않게 존재할 때, 집은 비로소 살고 싶은 공간이 된다는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