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물지 않고 살려낸 집이 있다. 1958년에 지어진 이 집은 60년이 넘는 시간을 품고 있었다. 새 주인 부부가 처음 이 집을 마주했을 때, 그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넓은 평수나 화려한 외관이 아니었다.
미드센추리 특유의 단단한 구조, 태평양 북서부 장인들의 손길이 느껴지는 디테일, 그리고 앞마당을 묵직하게 지키고 있는 목련 나무. 이 집에는 시간이 쌓인 무게가 있었고, 부부는 그 무게를 고스란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전 집주인은 이곳에서 10명의 자녀를 키웠다. 새 주인들은 성인이 된 자녀들로부터 집을 넘겨받으면서 한 가지 약속을 했다. 이 집이 가족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잊지 않겠다고.
그런데 리모델링을 시작하자마자 그 약속은 흔들렸다. 처음 만난 건축가는 집을 아예 허물고 새로 짓자고 했고, 공사 중에는 석면과 곰팡이까지 발견됐다.

그럼에도 부부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허무는 것은 그들의 가치관과 맞지 않았다. 이미 존재하는 것을 존중하고, 그 위에 새로운 이야기를 얹는 것이 훨씬 더 자신들다운 방식이라고 믿었다.
새로운 건축가와의 작업은 달랐다. 미리 정해진 스타일을 밀어붙이는 대신, 집주인의 이야기를 먼저 들었다. 설계는 세 번이나 바뀌었다. 바뀔 때마다 방향은 하나였다. 교체보다 보존, 새것보다 원래 것. 그렇게 방향이 거듭 확인되면서 집은 조금씩 새로운 모습을 갖춰갔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집의 입구였다. 정문이 동쪽에서 남쪽으로 옮겨지면서 진입 동선 자체가 새롭게 설계됐다. 차고에서 바로 이어지는 개인 현관과 다용도실은 집주인 가족만을 위한 동선이고,

콘크리트 마당과 철제 덮개가 있는 보행로, 그리고 보는 방향에 따라 불투명하게도 투과성 있게도 보이는 철제 슬랫 스크린이 설치된 공용 입구는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이다. 같은 집에 들어서는 두 가지 방식이 생긴 셈이다.

내부는 더 과감하게 바뀌었다. 벽을 허물고 천장 보에 구조용 철판을 볼트로 고정해 주방과 다이닝룸, 거실을 하나의 열린 공간으로 연결했다.
조리대는 내구성이 뛰어난 세라믹 소재로, 수납장과 마감재는 화이트 오크 원목으로 마감했다. 오래 써도 닳지 않을 소재들을 골랐다는 것이 느껴진다.

거실 한쪽에는 끝부분에 유리 칸막이가 달린 독립형 벽이 새로 세워졌다. 공간의 중심을 잡아주면서 계단 쪽으로 자연광이 흘러들게 하는 역할을 한다.

주방 양쪽에는 슬라이딩 유리문이 설치되어 데크와 마당으로 바로 이어진다. 문을 열면 실내와 실외의 경계가 사라지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날에는 공간이 자연스럽게 바깥으로 확장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