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땅을 파서 만든 정원이 있다. 약 31평 규모의 이 집은 고대 움집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왔다. 움집은 흙바닥 한가운데 화덕을 두고, 출입구를 닫으면 집 전체가 하나의 단단한 보호막이 되는 구조다. 겨울에는 그 안에서 열이 모이고, 바람 한 점 들어오지 않는다. 이 집은 바로 그 원리에서 출발했다.

다만 현대식 에너지 절약 주택은 남쪽 면을 크게 열어두는 구조라, 움집처럼 완전히 닫힌 보호막이 되기 어렵다. 이 집은 그 약점을 ‘구덩이 정원’으로 해결했다. 집 한가운데를 파내어 만든 반지하 형태의 정원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구덩이 정원의 남쪽 면에는 높이 5미터, 폭 8미터에 달하는 커다란 개구부가 뚫려 있다. 겨울 햇살이 이 구멍을 통해 깊숙이 들어와 땅바닥에 열을 쌓는다.


북쪽 꼭대기에는 10미터가 넘는 탑 모양의 구조물이 솟아 있어, 여름 밤에는 굴뚝처럼 작동하며 더운 공기를 밀어내고 시원한 밤바람을 끌어들인다.

이 정원은 방이 아니다. 거실도 침실도 아닌, 그냥 정원이다. 주변 방들은 이 정원을 둘러싸듯 배치되어 있고, 정원 자체는 어떤 기능도 수행하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조명조차 없다. 해가 뜨면 빛이 들어오고, 해가 지면 어두워진다. 그게 전부다.


그런데 바로 그 단순함이 이 집의 핵심이다. 기계 장치 없이 태양과 바람만으로 계절을 버티는 집. 구덩이 정원은 겨울에는 열을 모으는 그릇이 되고, 여름에는 밤새 냉기를 저장하는 공간이 된다. 주민들은 그 순환을 그저 맡겨두면 된다.

외관도 눈에 띈다. 주변 집들이 빽빽한 화단으로 시선을 막는 동안, 이 집의 바깥 정원에는 아무것도 심지 않았다. 자갈만 깔려 있을 뿐이다.

덕분에 이웃에게는 햇살이 가득한 열린 정원처럼 보이고, 집 안에서는 반대로 이웃의 정원 풍경을 자연스럽게 감상할 수 있다. 사생활을 포기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구덩이 정원 덕분에 시선이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 구조다.

땅속에 정원을 만들고, 그 정원이 집 전체의 온도를 조절한다. 단순한 발상이지만, 수천 년 전 사람들이 살던 방식에서 꺼낸 아이디어라는 점이 묘하게 설득력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