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주의 조용한 주택가 골목에 건축가가 가족을 위해 직접 지은 집이 있다. 골목에서 보면 흰 벽돌로 쌓은 벽에 창이 거의 없어 무슨 건물인지 짐작하기 어렵다.
이웃집이 바짝 붙은 동네에서 창을 밖으로 내는 대신, 집 안쪽으로 마당을 두 개 파 넣어 빛과 풍경을 안에서 해결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래서 이 집은 문을 열고 들어갈수록 표정이 바뀐다. 마당, 어둡고 낮은 복도, 나무로 감싼 방들이 차례로 나타나면서 처음의 차가운 인상이 점점 따뜻해지는 구조다.
집주인 부부의 이탈리아 혈통은 화려한 장식이 아니라 재료를 고르는 방식과 여러 시대의 건축에서 빌려온 형태로 은근히 드러난다.
외관과 앞마당

골목에서 마주하는 건 작은 문 하나뿐이다. 그 문을 열면 뜻밖에도 화강암 돌바닥을 깐 넓은 앞마당이 나온다. 나무 두 그루가 마당에서 자라 지붕에 뚫린 구멍을 통해 위로 뻗어 올라가고, 사방은 벽돌 벽과 지붕으로 둘러싸여 있다.

집 안으로 바로 들어가는 대신 이 마당을 한 번 거치게 한 것이 핵심이다. 골목과 집 사이에 완충 공간을 하나 더 두어 실내가 시작되기도 전에 바깥 소음과 시선에서 벗어나게 만든 셈이다.
현관 복도

앞마당에서 집 안으로는 아치문 하나로 들어간다. 그 뒤로는 일부러 낮고 어둡게 만든 통로가 이어지는데, 넓은 마당을 지나온 다음이라 좁고 어두운 공간이 더 극적으로 느껴진다. 밝은 거실을 집 깊숙한 곳까지 미뤄두어 기대를 쌓는 배치다.

원목으로 감싼 이 복도에서 TV 방 겸 서재, 세탁실, 손님용 화장실로 갈라진다. 그리고 계단 몇 개를 내려가면 주방과 다이닝룸이 나오면서 집이 비로소 열리기 시작한다.
주방

주방부터 집이 눈에 띄게 따뜻해진다. 벽과 천장까지 닿는 수납장을 오래된 오크로 감쌌는데, 세로로 흐르는 결이 방 전체를 가구 한 점처럼 보이게 한다. 아래쪽 수납장은 더 어두운 나무로 마감하고, 가운데 아일랜드만 연한 색으로 두어 나무의 무게를 덜어냈다.

가전은 모두 수납장 안에 넣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눈에 띄는 물건을 줄이는 대신 재료의 질감이 방을 채우게 한 것이다. 아일랜드 앞에 가죽 스툴을 두었고, 창으로 걸러진 부드러운 빛이 나무 위에 내려앉는다.
다이닝룸

주방 옆 다이닝룸도 같은 원목 톤을 잇는다. 한쪽 벽을 수납장으로 채우고 창 아래에는 낮은 원목 수납장을 길게 두었다. 어두운 색 식탁에 곡목 의자를 짝지었고, 그 위로 커다란 흰색 펜던트 조명이 부드러운 형태를 더한다.

두꺼운 짙은 색 커튼과 작은 청동 램프, 연한 타일 바닥이 짙은 색과 질감을 겹겹이 쌓는다. 화려하게 꾸민 건 없지만 재료 하나하나가 손에 닿는 느낌으로 골라져 있다.
안뜰

다이닝룸에서부터 두 번째 마당이 서서히 드러난다. 앞마당보다 크고, 집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어 밖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돌바닥과 오래된 나무들을 함께 두어 거실과 다이닝룸에 빛을 들이는 역할을 맡았다.
현관에서 이어진 어둡고 낮은 통로를 지나온 뒤라 이 마당에 이르면 집이 갑자기 밝고 넓어진 것처럼 느껴진다. 창을 밖으로 내지 않고도 채광을 해결하는 이 집의 방식이 여기서 가장 잘 보인다.
거실

거실은 벽돌과 원목, 트래버틴으로 이루어진 건축 위에 오랜 시간 모은 가구와 천, 그림, 물건을 얹은 방이다. 무늬와 색은 대부분 이 물건들에서 나오고, 벽과 바닥은 그 뒤에서 조용히 받쳐준다.

이 집을 위해 따로 만든 물건도 있다. 석고로 빚은 커다란 고리 모양 새 조명이 천장에 걸려 있고, 책을 진열하려고 만든 투명 아크릴 테이블이 놓여 있다. 소파는 빈티지 니트 원단으로 씌워 자연 재료 위주의 실내에 선명한 색을 한 점 더했다.
계단

현관 가까이에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다. 계단 위에 천창을 내어 빛이 계단통을 타고 아래 현관까지 내려온다. 어두운 현관 통로 옆에서 위에서 떨어지는 빛이 또 하나의 전환점이 되는 셈이다.
계단은 아래층의 공용 공간과 위층의 사적인 방을 나누는 경계이기도 하다. 손잡이와 난간까지 부드럽게 다듬어 나무로 마감한 집의 결을 그대로 이었다.
안방과 드레스룸

2층 안방도 벽을 오크로 감쌌다. 붙박이 수납장이 방에서 드레스룸까지 끊기지 않고 이어진다. 침대는 짙은 색 천을 씌운 헤드보드에 기대 놓았고, 연한 회색 침구와 얇은 커튼, 작은 액자 하나로 방을 가라앉혔다.

드레스룸은 천장까지 닿는 문 뒤로 수납을 전부 감췄다. 원목 화장대와 단순한 벽 조명이 아래층 수납장과 같은 방식, 즉 붙박이장을 가구처럼 보이게 하는 방식을 되풀이한다.
욕실

욕실 두 개는 성격이 정반대다. 하나는 오크 수납장에 세면볼을 일체형으로 넣고 큰 거울 수납장을 달아 아래층과 같은 따뜻한 나무 톤을 잇는다.

다른 하나는 훨씬 어둡다. 가늘고 긴 숯색 타일을 붙박이 욕조 주변에 세로로 붙였고, 빛은 위에서만 들어온다. 그 빛이 타일 줄눈을 하나하나 드러내면서 좁고 극적인 분위기를 만드는데, 그러면서도 재료는 여전히 절제되어 있다.
출처: bearchitectur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