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한 그루도 베기 싫어 설계를 처음부터 다시 한 집” 자연이 주인공인 단독주택

이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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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살리기 위해 설계도를 버린 집이 있다. 처음 완성된 설계안은 결국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부지에 있던 성숙한 나무들을 제거해야만 원하는 면적을 확보할 수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건축주는 그 선택을 거부했고, 설계는 백지에서 다시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나무가 먼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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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70평 규모의 바위투성이 땅 위에 지어진 이 3층 주택은, 지형을 평탄하게 고르는 대신 있는 그대로의 땅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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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나무들의 위치가 집의 배치를 결정했고, 그 사이사이에 안뜰이 생겨났다. 창문과 개구부는 실내에서 언제든 바깥 풍경과 연결될 수 있도록 신중하게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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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서 파낸 돌은 버려지지 않았다. 그 돌들은 벽체와 조형적인 건축 요소에 그대로 재사용되었다. 덕분에 집과 땅 사이에는 눈에 보이는 연속성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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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목재, 석재로만 이루어진 절제된 색조는 의도적으로 배경에 머문다. 가장 강렬한 색은 언제나 창밖의 초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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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는 안뜰로 여과된 햇살이 쏟아지고, 오후가 되면 그늘진 공간으로 빛이 옮겨간다. 저녁에는 돌과 나무, 따뜻한 조명이 어우러져 집 전체가 낮은 온도로 빛난다. 집이 하루의 흐름에 맞춰 조용히 변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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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진 지붕은 이 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요소다. 건축주가 오래전부터 매력을 느꼈던 전통 건축 양식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설계 후반부에 구체화되었다. 지붕선은 건물을 가로지르며 극적으로 오르내리고, 그 아래 공간에 그늘과 깊이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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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루버 창문은 바람을 들이면서도 시선을 차단한다. 반쯤 열린 테라스, 그늘진 출입구, 층층이 이어지는 동선은 실내와 실외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든다. 집 안에 있으면서도 밖에 있는 것 같은 감각이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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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중앙에는 철근 콘크리트로 만든 나선형 계단이 조각처럼 솟아 있다.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공간 전체의 시각적 중심이다. 1층에는 안뜰이 내려다보이는 로비를 통해 두 개의 침실이 연결되고, 위층의 안방은 나무들 사이로 자연광이 스며드는 구조로 설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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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은 절제되어 있지만 차갑지 않다. 동물 형태의 조각품, 수집한 예술 작품, 아르데코 스타일의 소파가 곳곳에 자리하며 집에 온기와 개성을 더한다. 어느 것도 지나치게 꾸며진 느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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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서 흙을 묻히고 들어온 아이들, 반쯤 열린 공간에서 나누는 대화, 나무 그늘 아래의 고요한 오후. 이 집은 그런 순간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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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나 화려함보다 개방감과 분위기를 택한 집. 건축물이 땅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 땅의 일부였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