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파지 않고 공중에 지은 집이 있다고?” 아래로 사슴이 지나다니는 25평 단독주택

이정수

파트너스 활동을 통해 소정의 수익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Miller Hull

땅 위에 서 있지 않은 집이 있다. 가파른 경사면, 전나무와 마드론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숲 가장자리. 야생 양과 사슴이 언덕을 오가는 그 자리에, 25평짜리 오두막이 공중에 떠 있듯 자리를 잡았다. 지면을 파내거나 훼손하는 대신, 구조물 자체가 경사를 따라 흐르며 땅 위로 솟아오른 형태다.

Miller Hull

이 집을 처음 마주했을 때 눈에 들어오는 건 리드미컬하게 반복되는 강철 뼈대다. 수직으로 솟은 구조물이 주변 나무줄기와 닮아 있어, 숲 속에서 이질감 없이 녹아든다.

Miller Hull

주요 생활 공간은 나무 캐노피 사이로 떠 있는 형태로 설계되었고, 덕분에 지면은 그대로 자연에게 돌아간다. 오두막 아래로 사슴이 지나가는 풍경이 일상이 된다.

Miller Hull

설계의 핵심은 단순히 ‘작고 예쁜 오두막’이 아니다. 이 집은 처음부터 200년을 내다보고 만들어졌다.

Miller Hull

강철로 된 외부 뼈대와 목재로 구성된 내부 단열 구조가 완전히 독립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 거주자가 바뀌거나 생활 방식이 달라지더라도 내부 구성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다. 집이 사람에게 맞춰 변하는 구조다.

Miller Hull

내부 공간은 넓은 외부 데크와 연결되어 있어, 계절에 따라 생활 반경이 달라진다. 여름엔 데크가 거실이 되고, 겨울엔 실내로 생활이 모인다. 남쪽으로 길게 뻗은 처마가 한낮의 강한 햇볕을 막아주면서도 야외 공간을 사계절 내내 쓸 수 있게 해준다.

Miller Hull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방식도 눈여겨볼 만하다. 냉난방이 필요한 공간 자체를 줄이는 것, 그게 이 집이 선택한 방법이다. 순환 동선이 외부에 배치되어 있어 실내 냉난방 부하가 자연스럽게 낮아진다.

Miller Hull

그래도 해결되지 않는 에너지 수요는 3.6kW 규모의 태양광 시스템이 담당한다. 향후 거주 일정이 늘어날 경우를 대비해, 태양광 시스템을 확장할 수 있는 기반도 처음 공사 때부터 함께 갖춰뒀다.

Miller Hull

25평이라는 면적이 좁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공간이 안팎으로 열려 있기 때문이다. 실내와 데크, 데크와 숲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경계가 흐려진다. 집이 풍경 속에 놓인 게 아니라, 풍경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구조다.

Miller Hull

오래 쓸 수 있고, 자연을 해치지 않으며, 작지만 답답하지 않은 집. 이 오두막이 보여주는 건 단순한 미니멀리즘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버티는 설계의 태도다.